Tuesday, August 21, 2012

Coffee

What 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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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공동대표 유시민 당원입니다. 
 
 
커피 문제로 논란이 많은 것 같아서 몇 말씀 드립니다.
 
 
저는 백승우님의 문제제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공직 이나 고위 당직을 맡은 당원들은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 젖지 않도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또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당의 공동대표를 하는 동안 제가 혹시 당직자들을 무시하거나 쓸데없는 의전 때문에 당에 경제적 부담을 지운 일이 없는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사람은 불완전하지요. 좋은 원칙을 가지고 잘 지키려고 노력해도 때로 실수를 합니다. 실수하면 성찰하고 고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공동 대표단 회의에서 제가 아메리카노 마시는 장면을 뉴스에서는 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기자들의 취재를 허용하는 공개회의가 끝난 다음에, 또는 비공개 회의에서 마셨으니까요. 대표단 회의는 대부분 국회 본청 2층 우리당 의정지원단에서 열렸습니다. 의정지원단에는 커피를 내리는 커피머신이 있습니다. 당직자들이 그 커피를 가져다주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커피포트에 내려놓은 커피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자와 당직자들도 마시니까요. 또 회의가 길어질 경우 도중에 정신을 좀 차리기 위해서(저나 심상정 대표는 그럴 때 커피가 땡깁니다.^^) 커피를  찾게 되는데, 회의하다 말고 배석한 당직자더러 새로 커피를 내리라고 부탁하긴 좀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제가 수행비서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커피 좀 부탁한다." 이렇게요. 그러면 제 비서가 의정지원단에서 계단을 한층 올라가면 있는 의원식당 앞 실내 테이크아웃 코너에 가서 보통 넉 잔 정도 사서 가지고 옵니다. 거기 아메리카노 가격이 아마 2천원일 겁니다. 혼자 넉 잔을 들고 오기 위해서 종이로 만든 홀더에 담아오지요. 사실, 심대표가 커피를 찾고 제가 문자를 보낸 때가 더 많았을 겁니다. 꼭 아메리카노만 마신 건 아닙니다. 카라멜 마끼아또나 카푸치노를 마시는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저는 '별다방'에서 파는 '프라푸치노 에스프레소 칩'을 사실 좋아하는데 그걸 사러 밖에까지 나가게 하는 건 좀 과하지요.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의가 잘 진행되지 않아 머리가 아플 때는 좀 단 커피를 먹는 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정희대표나 조준호 대표도 원하실 때는 함께 한 잔씩 나누었답니다.
 
 
커피 를 사다준 제 비서는 2003년 4월 제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부터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웃에 살지요. 함께 낚시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함께 담배도 피우고, 당구도 같이 치고,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려 놀고, 가끔은 두 집 가족이 함께 외식도 하고(밥값은 당근 제가 내지요.^^), 뭐 그러는 사이입니다. 제가 과천에 근무할 때도 수행을 했습니다. 운전만 해주는 게 아니라 전화도 대신 받고 일정도 조정해주고 기자분들 연락 오면 보고해 주고, 여하튼 제 정치활동과 사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입니다. 대표단 회의를 할 때는 혹시 회의 도중에 제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까 싶어서 늘 근처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말을 하지 않으면 아메리카노를 사다 줍니다. 제가 찬 것을 마시다가 배탈이 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게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가져다줄 때도 제게는 따뜻한 것을 가져다 줍니다. 백승우님이 비서실장 이야기를 한 것은 아마도 제 수행비서가 회의실에 들어오기가  좀 그래서 문자로 비서실장에게 커피 왔다고 보고를 하면 비서실장이 나가서 받아오곤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카드로 결재화는 공동대표의 활동비는 한 달에 100만원이 한도였습니다. 지방출장 교통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액수였습니다. 커피를 사거나 하는 소소한 지출은 제가 따로 수행비용을 조금 주어서 해결했습니다.
 
 
당대 표가 뭐 대단한 자리는 아닙니다. 저도 보통 시민들처럼 생활비와 아이 등록금 걱정하고 틈틈이 시간 내서 책을 쓰고, 가끔 강연이나 방송토론 나가서 강연료와 출연료 받으면 '비자금'으로 활용하고, 뭐 그렇게 삽니다. 예전에 쓴 책 인세가 조금씩은 들어오니까 몇 달 정도 공동대표 일하는 동안 돈벌이 못하는 건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지요. 당직을 사퇴한 후에는 주로 작업실(출판사에서 방을 하나 임시로 내준 덕에!)에서 글 쓰고, 저녁에는 혁신파 모임에 조용히 참석하고, 그렇게 근신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덜 바쁠 때 벌이가 되는 일을 좀 해야 또 바빠지더라도 견딜 수 있고 선거 때 선인세 받아 쓴 걸 갚을 수도 있지요.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즘은 당이 너무 어려워져서 마음이 심란한 탓에 글도 잘 써지지 않는군요.
 
 
그래 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거 사실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 미국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싱거운 물커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리는 일입니다. 저는 아주 가끔씩만 합니다. 저는 아내보다 좀 더 싱겁게 내려서 지청구를 듣곤 하지요. 아침에 커피향이 주방과 거실을 채울 때,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향이 더 좋습니다. 원두는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는 곳에서 온라인 구매를 합니다. 손잡이를 돌려서 원두를 가는 조그만 통(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은 3만5천원 짜리인데 역시 온라인 구매를 한 것입니다. 누가 '부르주아적 취향'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인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한 논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지난 10여 년, 정치인으로서 정당인으로서 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같은 길을 택한 분들은 훌륭한 자질과 능력이 있는데도 국회의원이 되지 못해 국민들께 봉사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너무나 미안합니다. 꼭 무엇이 되겠다고 이 길을 나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직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저의 실패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성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창조적 흥분상태'라는 게오르그 짐멜이 만들었고 막스 베버가 널리 알린 말이 있습니다. 베버는 1920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초기에 사회주의혁명가와 진보지식인들을 향해 이것을 경계하라고 충고했지요. 아무 가치있는 것도 낳을 수 없는 '비창조적 흥분상태' 또는 '불모의 흥분상태'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고 스스로 세운 행동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하라고 했던 임마누엘 칸트의 충고를 잊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커피 때문에 불편한 느낌을 받은 당직자가 백승우님 말고도 더 계실지 몰라서 이 기회에 말씀드립니다. 혹시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일부러 또는 알면서도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 수행비서 말고 다른 당직자 누구에게도 '커피심부름'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저는 '커피심부름'을 했던 제 수행비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신뢰하고 존중합니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 사람에게 언성을 높여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본의와는 다르게, 타인에게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친 적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살겠습니다. 
 
 

Sunday, May 20, 2012

나누는 것



-‘잘 산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도 결국은 잘 살기 위해서잖아요. 나누는 것 외에는 다른 답이 없더라고요. 저는 특히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함께하고 나누는 건 생명력이 굉장히 길어요. 예를 들면 딸아이가 파리로 공부하러 가기 전에 저희가 1년치 학비를 모아놨어요. 그런데 쌍용차 소식을 접하고 너무 가슴이 아픈데, 관련해서 금전적으로 돕고 싶은 두세 군데의 단체가 있는 거예요. 딸아이도 쌍용 상담 현장에 늘 같이 갔으니까 불러서 물었어요. ‘얘, 아버지가 여기다 네 학비를 내고 싶어, 어떻게 생각하니?’ 딸이 그러더라고요, ‘내! 프랑스는 무료로 갈 방법을 찾아볼게. 안 되면 1년 쉬었다 가지 뭐.’ 그래서 그 돈 다 냈어요. 그 직후에 <홀가분>이 나왔는데 딱 그만큼 인세가 들어왔어요. 그 경험을 하니까, 어 이거 봐라, 되게 재밌네. 그래서 요즘 제가 돈을 무지하게 잘 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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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혜신 박사를 좋아하는 건, "사람 vs 사람"을 읽고 나서 부터다. 책을 읽으며 많이 끄덕였고, 좋아하는 사람대가 맞는 것 같고, 정서가 비슷하다는 생각 ---> 순전히 내 생각.
그 후, 정혜신이 한겨레에 쓴 칼럼을 읽으면서 또 고개를 끄덕이고, 참 글을 조리있게 간결하게 잘 쓴다는 생각 -->한마디로 "get to the point"를 잘 하는 글..-- 에 좋아하게 된 듯. 그 후, 이리 저리 웹서핑을 하고 관련자료를 찾다보니 그 남편과 결혼 생활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인터뷰 상]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8512.html
[인터뷰 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ima0306&logNo=50134339073

부부가 함께 사는 이유가, 자식이라거나, 돈 때문에 사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서적인 친밀감과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부부금슬이 좋아지고, 가치관이 조율되어 가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의 일을 부부가 함께 하고, 계획하는 바가 같고.. , 결정적으로, 바라보는 미래가 같다.

어쨌든...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것에 대해, 와 닿는 인터뷰 내용이 바로 위의 인용한 구절. 그 남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이 요즘 내가 생각하는 부분과 공감되는 부분이다. 요즘 전도서를 읽으면서, 솔로몬의 "헛되고 헛되도다."에서 생각이 멈춘다. 도대체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고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위에서 정혜신의 남편이 말한 것 만한 정답은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돈에 대해서 나누는 것은 더욱 어렵다. 헌금을 많이 하다가도, 문득 문득 은행에서 돈 떨어지는 기록을 보면, 당장, "줄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밥 두 번 사면, "한 번은 저쪽에서 사야 하는 게 경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돈이 드는 게 아닌, 가능한 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고 싶어 하고... ^^;;;


엊그제 우연히 힐링캠프를 봤는데, 가수 박진영 또한 존경할 만한 개념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데는, 돈이 33%, 명예가 66%, 그리고 자선이 99% 라던가.. 사람이 나누고 살아야 가장 본질적인 행복의 근처에 갈 수 있다는 거다. 박진영은 나머지 1%는 절대자에게서 찾았지만.. , 나 같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절대자가 결국 100%를 아우르게 만드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


누구든지, 잘 살고자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나눔"에 대해서 결코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다. 우리는 나눠야 한다. 그게 우리네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어떻게 보람을 주게 될 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99% 근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고민해야 할 것들은, 현재 내 상황에서..

1. 무엇을 나눠야 할까.
2. 어떻게 나눠야 할까.


한 번 사는 인생.
가능한 한 제대로 살아야 할 텐데...
여전히 더 고민해야 할,
숙.제.다.


-미영




Monday, April 23, 2012

"옷차림이 되게 좋으시네요."


어제 한국마켓에 갔다가..
쌀 40 파운드를 사면 15파운드를 공짜로 준다길래, 쌀도 다 떨어져가는 것 같아 구입하기로 했다. 쌀이 무거워, 어린 아르바이트 직원이 차 있는 곳까지 날라준단다. 오~~ 좋은 서비스에 감사하며, 카트를 신나게 몰고 가는데... 갑자기 그 직원 하는 말,
"옷차림이 되게 좋으시네요."

청바지와 티셔츠 위에 조끼를 입은 40대 초반의 아줌마에게 무슨 소리일까 싶어, "네?" 하고 물으니, 패션이 이쁘다고....
오, 마이 가드.....!!!  :D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이런 칭찬에 어쩔 수 없이 약한가보다.
완전히..., "he made my day!!!" 였다.
운전을 하면서도... 내내 나는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 순간 내게 스쳐갔던 즐거웠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느끼고.... ^^;;;

여자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잊어버려야 하는 말이라 그랬는지, 갑자기 들은 그 말에 황당하기 조차 했던 '나'. 미모나 패션을 신경쓴다고 해도, 그냥 남보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 하며 살아가는 아줌마의 인생에 접어들었다 생각하며..  "이쁘다"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나'....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참 안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마음 한구석에선,
이런 말을 내 남편이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미영.



Thursday, February 23, 2012

엄마는 나를...

오늘 이제민 신부님의 글을 읽다, "나는 주변을 설레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면서 태어났다." 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탄생을 생각해 보았다.


2남 3녀의, 3녀.
위로 언니 둘, 그리고 밑으로 남동생 둘.
엄마는 태몽부터 남달랐던 내가 사내아이이기를 무척 바라셨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모든 증상(?)이 아들이었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 머리가 커서(?), 드디어 아들을 갖게 되신 줄 알고, 엄청 기대 만빵이셨다. 그런데, 나와보니... 딸이었던 거다.


그 후, 다시 아들을 낳기 위한 일념으로, 급히 임신을 하시고, 드디어 고대하시던, 아들을 얻으셨다. 너무나 너무나 귀해서, 아예 무릎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던.... 그 아들...


그 말씀을 하실 때, 나는 가만히... 생각했었다.
그 때, 두 살이었던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요즘도... 아주 가끔.. 나는 생각한다.
엄마품이 너무도 필요했던 두살박이, 조용하기만한, 여자아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주님, 제가 태어나던 때의 저를 늘 남에게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남이 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평화를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이 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이 저에게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남이 저에게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그들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기도를 읽으며.... 나의 탄생은, 주위의 기쁨이었을까............. 를 생각하니.... 답이 저절로,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추신
그래도.. 장담하건데, 살면서.. 그 아들보다는 엄마께 기쁨과 자랑거리... 그리고 마지막까지 의지가 되었다는 거.....
  

-미영


Friday, February 17, 2012

REQUIEM

모짜르트의 레퀴엠(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미사곡) - 
태어나서, 처음으로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음악.


YouTube Link: Requiem - Mozart


다시 들어도,
언제 들어도...
그리고 지금처럼 최악으로 마음이 우울할 때는 더욱....


웅장함.. 엄숙함... 그리고 아름다움.....!!!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곡을 듣고 나면,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다는 것...!

I. Introitus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et tibi reddetur votum in Jerusalem;
exaudi orationem meam, ad te omnis caro veniet.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그리하여 영원한 빛이 저들에게 빛나길..
당신은 찬미받아 마땅하나이다, 시온의 하느님,
당신께 [드린] 서원 예루살렘에서 지켜지리이다.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당신께로 모든 육체가 나아가리이다.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Kyrie eleison.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II. Sequentia
Dies irae, dies illa
solvet saeclum in favilla,
teste David cum Sibylla.
Quantus tremor est futurus,
quando judex est venturus,
cuncta stricte discussurus.
진노의 날, 그 날
[인간]세대를 티끌로 바수어 버리리라,
시뷜라와 함께 하던 증인 다윗[의 증언]에 따라.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으리오,
심판자가 임재하시어
만물이 산산히 부숴질 때.
Tuba mirum spargens sonum
per sepulchra regionum,
coget omnes ante thronum.
Mors stupebit et natura,
cum resurget creatura,
judicanti responsura.
Liber scriptus proferetur,
in quo totum continetur,
unde mundus judicetur.
Judex ergo cum sedebit,
quidquid latet apparebit,
nil inultum remanebit.
Quid sum miser tunc dicturus?
Quem patronum rogaturus,
cum vix justus sit securus?
기적의 나팔소리
[세상]끝 묘지들까지 울려퍼져
만인을 왕좌 앞으로 모으리라.
죽음과 자연이 놀라워하리라,
피조물이 부활하여
심판자에게 변명을 하리니.
기록한 책 펼쳐지리라,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이윽고 세상이 심판을 받으리라.
하여 심판자 좌정하시리니
숨겨진 일들이 드러나리라,
[지은 죄] 남김없이 벌을 받으리라.
무엇을 가련한 나 그때 말하리오?
어느 변호자에게 나 도움을 청하리오?
자칫 의인마저 무사하지 못하리니.
Rex tremendae majestatis,
qui salvandos salvas gratis,
salva me, fons pietatis.
두렵기만 한 위엄의 왕이시여,
당신은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은총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나를 구원하소서, 자비의 샘이시여.
Recordare Jesu pie,
quod sum causa tuae viae,
ne me perdas illa die.
Quaerens me sedisti lassus,
redemisti crucem passus;
tantus labor non sit cassus.
Juste judex ultionis,
donum fac remissionis
ante diem rationis.
Ingemisco tanquam reus,
culpa rubet vultus meus;
supplicanti parce, Deus.
Qui Mariam absolvisti,
et latronem exaudisti,
mihi quoque spem dedisti.
Preces meae non sunt dignae,
sed tu, bonus, fac benigne,
ne perenni cremer igne.
Inter oves locum praesta,
et ab haedis me sequestra,
statuens in parte dextra.
기억하소서 자비로우신 예수여,
당신의 [인간]삶으로 하여 나 존재하고 있음을,
그 날에 나를 멸하지 마소서.
나를 찾으시느라 당신은 기진하셨나이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나를] 대속하셨나이다: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소서.
응분의 벌을 내리시는 정의로운 심판자시여,
죄사함을 선사하여 주소서.
엄밀한 응보(ratio)의 날이 오기 전에
죄인이오니 나 탄식하나이다,
잘못으로 인하여 나의 뺨은 붉어지나이다:
겸손하게 비는 저를 어여삐 여기소서, 하느님.
[막달레나] 마리아를 사면하셨듯이,
강도의 말을 경청하셨듯이,
당신은 나에게도 희망을 주셨나이다.
나의 탄원은 하잘것 없으오나,
당신은 선한 분이시니 자애를 베푸소서,
영겁의 불에 나 불살라지는 일이 없도록.
양 무리 가운데 [나의] 자리를 마련해 주소서,
염소 무리에서 나를 떼어 놓으소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어서.
Confutatis maledictis,
flammis acribus addictis,
voca me cum benedictis.
Oro supplex et acclinis,
cor contritum quasi cinis,
gere curam mei finis.
변명의 여지없는 자들 저주받아
쓰거운 불길에 처해질 때
축복받은 자들과 함께 나를 부르소서.
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나이다,
마음은 [타버린] 재처럼 바숴졌나이다,
나의 종말을 돌보아 주소서.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Huic ergo parce, Deus.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Amen!
눈물의 날, 그 날,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하오니 그 사람을 어여삐 여기소서, 하느님.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III. Offertorium
Domine Jesu Christe! Rex gloriae!
Libera animas omnium fidelium
defunctorum de poenis inferni et de profundo lacu!
Libera eas de ore leonis,
ne absorbeat eas tartarus,
ne cadant in obscurum:
sed signifer sanctus Michael repraesentet eas in lucem sanctam,
quam olim Abrahae promisisti, et semini ejus.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광의 왕이여!
구원하소서, 모든 죽은 신실한 영혼들을
저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저 심연의 곳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사자의 아귀에서.
지옥이 저들을 삼키지 못하게 하소서,
어둠 속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인도자 성 미카엘로 하여 저들을 거룩한 빛 속으로 이끌게 하소서.
그 옛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그 빛 속으로.]
Hostias et preces tibi, Domine, laudis offerimus.
Tu suscipe pro animabus illis, quarum hodie memoriam facimus:
fac eas, Domine, de morte transire ad vitam.
quam olim Abrahae promisisti, et semini ejus.
희생제물과 탄원을 당신께 [바치나니다], 주님, 찬미를 바치나이다.
받아주소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자들의 영혼을 위하여:
저들을 옮겨주소서, 주님,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 옛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생명으로.]
Sanctus, sanctus, sanctus Dominus Deus Sabaoth!
Pleni sunt coeli et terra gloria tua.
Hosanna in excelsis.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 위에 당신의 영광 가득하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
Hosanna in excelsis.
복되어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eis requiem.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eis requiem sempiternam.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분,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분, 저들에게 늘 안식을 주소서.

IV. Communio
Lux aeternam luceat eis, Domine,
cum sanctis tuis in aeternum, quia pius es.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cum sanctis tuis in aeternam: quia pius es.
영원한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주님,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당신은 자비로우시니.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당신은 자비로우시니.

Thursday, February 16, 2012

부활과 천국..


이제민 신부 “우리가 믿는 부활은 없다”
이제민 신부, 대화문화아카데미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부활관 밝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다”
2012년 02월 11일 (토) 16:40:28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지난 2월 10일 ‘내가 믿는 부활은?’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부활관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민 신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칼 라너의 말을 빌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은 없다고 믿는다” 고 말했다.

이제민 신부는 “올해로 88세가 된 제 어머니는 부활을 믿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는 부활에 대한 그림은 신학적으로 틀렸다” 고 전했다. 예수는 그분이 믿는 방식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활의 삶을 보는 이제민 신부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돌고 있다고 믿는 어머니에게도 태양은 여전히 따스한 빛을 내려 보낸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다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부활을 믿을 뿐인데, “지금 우리 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게 이제민 신부의 진단이다. “내 어머니의 신학 수준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의 신학 수준이라면 서글픈 일”이라며 “교회는 발전해 가는 현대인에게 늘 과거의 사고방식만을 전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입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시체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 이제민 신부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저승과 부활신앙은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부활은 죽어서 얻는 게 아니라, 살아서 제 몸으로 구현해야 할 새로운 삶이다.  
이제민 신부는 “부활메시지가 단순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이 이 다음에 부활해 천당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활신앙이 허무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만 부활하고 나머지는 부활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넌센스라고 일갈한다. 더군다나 예수의 이름과 ‘부활’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수천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을 지옥에 버리는 것 역시 오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부활을 ‘죽음 다음에 오는 삶’으로 고정시키고,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예수는 사후의 삶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후의 삶을 지금 당신의 인생을 통하여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우리도 그분처럼 남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없이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전한다. 즉,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즉,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이를 두고 이제민 신부는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든 극락이라 부르든)을 나는 믿지 않는다” 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부활은 우리 생애에서 수없이 발생한다

이제민 신부는 “우리보다 앞서 죽은 이들이 지하세계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나는 부활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 맞갖는 삶을 ‘지금여기’에서 살아야 하며, 그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죽음과 부활이 우리 생애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하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우리 머리가 물속에 잠기듯, 낡은 인간은 무덤에 묻히고 완전히 잠겨 영영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 머리를 물에서 다시 건져낼 때 거기서 새 인간이 태어난다”고 한 말을 상기시키며, 영생은 자신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삶에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마저도 그분 생애의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분 생애 안에서 늘 일어난 일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부활한 자는 자기를 죽임으로써 사랑의 삶을 산다. 타락한 종교에는 이 사랑이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가기 위해 선을 행하고 남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다. 천국은 자기만 잘 살려고 남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이런 사랑을 죽일 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이제민 신부는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활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전하며, 주변에서 듣는 '부활체험 이야기'가 정작 복음서가 전한 '부활'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떠도는 '연옥체험'이나 '천국체험'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
“먼저 세상의 빵이 되어야 한다”


덧붙여 이제민 신부는 우리가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천국은 부활을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역시 자기만 다시 살아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는 꿈을 꾸는 무리들이 모여 기도하는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회가 ‘믿음’의 이름으로 저희들만의 영복을 위해 모일 때 종교의 타락이 시작된다고 믿는 이제민 신부는 “이런 맹신과 광신의 집단이 인간을 오류로 안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부활이 삶을 살고 싶은 이들은 먼저 ‘빵이 되라’고 요청받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고, 목마른 이의 물이 되고, 헐벗은 이의 옷이 되라고 주문한다. 감옥에 갇힌 이에게 위로가 되고, 타인의 고통을 제 고통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어 주고, 우리 몸에서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가 풍겨나오게 사는 게 부활의 삶을 ‘지금여기’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마태 25, 34)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듣게 될 말은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다.

결국 부활의 삶이란 ‘나’는 사라지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활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이다. 이처럼 우리는 죽어서 영복을 누리는 부활이 아니라, 지금 사는 동안에 겪는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느님을 닮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웃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땅과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사는 길”을 접어야 한다.

죽은 다음에 올 육신의 부활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는 동안에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다. 이제민 신부는 마지막으로 “설혹 고통을 주는 십자가가 나에게 온다 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제 몸으로 부활한 몸을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삶을 미루지 말고 당장 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하자고 권한다.


*

나는 개신교인이다.
그러나 늘, 교회에서 듣는 천국관과 부활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해설에 의문이 먼저 들고, 깨끗하지 못한 논리에 짜증이 났다. 죽었다 살아났다면서 천국을 보았다는 사람들, 정말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부분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몰랐고, 왜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몰랐다.

그리고, 천국 가기 위해 '사랑'을 베푸라는 사람들의 말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사람들만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배척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꽹과리 소리같은 '사랑'을 남발하는 사람들....

'세상적'이라는 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자신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은 아주 느슨하고 그럴 듯한 잣대로 세상의 것을 취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이들도 수없이 만났다. 목회자이건, 성도들이건...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숨통이 트임을 느낀다. '그렇지, 이거야!' 하며, 내가 믿는 기독교를 드디어 만났다. 동안, 말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내 부활관을, 내 천국관을 이제민 신부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기독교인들의 오만과 과잉과 맹신과 모순과, 이기심에 대한 일갈이다.

그렇지..!
이거지...!!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부활'이고, '천국'이지..!!!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것은 힘들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아주 아주 힘든 거지....!!!!!


- 미영.






Wednesday, February 15, 2012

조강지처를 버리고....


19살에 남편을 만나, 20년을 함께 산 남편. 그 남편의 한의원이 망하게 되고, 더하여, 그 남편이 바람이 나더니, 재기불능의 상태에서, 재수생, 중3 아들을 남겨놓고 이혼해 달란다. 내 착한 친구의 이야기다.

바보같은 내 착한 친구는, 비자금 한 푼 조성(?)하지 못한 체 당장 생활비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 판국에, 그 남자의 배신에 대한 상처가 더 커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 친구가 부르짖는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20년을 그사람만 바라보며 산 나에게, 어떻게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갈 수 있나...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나는 남에게 나쁜 짓 한 번, 거짓말 한 번 하지 않고 살았는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남자, 내연의 여자가 집 팔아 한의원 개원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그 돈으로 재기해서 내 친구에게 생활비와 교육비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제발 이혼해 달라고.......!

*


한국은 지금....
도덕성의 부재인가....

도대체 배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남자를 어떻게 매장시켜야 할까....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막장드라마를 더 봤어야 했다.. 이럴 때, 막나가는 법이라도 배워놓을 걸 그랬다.

한국 사회는 무섭다.
한국 사회는 뿌리부터 썩어가는 듯 하다.
근간이 사라져간다.

도덕의..
윤리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 미영



Tuesday, January 31, 2012

성경 일독 학교


올 해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사는 '박미영'이 되기로 했다.

몇 해 동안 거의 목회자들에 대한 불신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신념과 일치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비난하며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저 멀리서 내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어디 한번 해보세요' 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도하는 중에, 지금까지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오점들이 대부분 내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고, 내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이었는 지 깨닫게 되었고, 이제부터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즉, 지금까지 내 신앙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오만'이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를 무슨 대단한 사람인 양,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봉사를 하고,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칭찬하는 것을 내 정신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내 인생의 즐거움이 된 것이다. 결국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는 한, 나는 끝없이 황폐하고, 끝없이 고민하고, 끝없이 남의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사람!.. 사람!...
내 인생은 사람으로 채워져야 되는 것처럼, '외롭다', '나 좀 바라봐', '나와 함께..' 를 외쳐대며, 늘 고민을 들어주라고 보채고, 늘 누군가 옆에 있기를 바라면서..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만이 복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사람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누군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고,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내 앞에 죄인으로 낙인 찍히고, 나를 찾지 않는 사람조차 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이었는지....

내 생각이 변하고 내 인격이 변해야, 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내 인생이 달려 있다는 것인데, 내 생활의 중추적인 가치관이 흐려있는 상태에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없게 되므로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혹시 애정결핍으로 인한 '우울증'이 아닐까 하면서, 마냥 나 자신만을 변호하고 위로하며 불쌍히 여겼던 것이다.

이제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한다. 먼저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하므로써,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내가 걷게 되길 희망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 이번에 교회에서 목사님이 주관하는 성경 일독 학교에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기로 했다. 아무리 바빠도 내 생활에 우선순위를 하나님으로 맞추고, 내 모든 스케줄을 그렇게 잡아가기로 했다.

올 해의 이 계획으로, 12월 31일이 됐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환하고 자신감있게 웃을 수 있는 박미영이 되고자 한다. 파이팅!!!


-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