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깝게 지내는 선배언니가 겪은 일이다.
어느 미국인 부부가 집에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에 한 청년(미국인)을 고용했는데, 그 청년이 언니의 학교 친구였고, 그 동안 언니와 친하게 지내오고 있었다. 그 부부는 최근에 가구를 새로 들여 놓았는데, 헌 가구를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페인트를 칠하던 친구는 그 부부가 쓰던 가구를 혹시 언니가 원하지 않을까 생각했는지, 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가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언니는 한국에서 오는 새로운 식구를 위해 가구가 필요하다고 생각, 그에게 기꺼이 가구를 받고 싶다고 얘기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배어나오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110도가 오르락거리는 무덥기만한 땡볕 더위에, 그 미국인 친구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킹베드, TV장, 또 덩치 큰 레이지소파 등을 옮겨 준 것 뿐 아니라, 헌 가구를 버리는 것 또한 도와줬다.
언니는 완전 감동을 했다. 이 친구가 어떻게 이런 일을 아무런 불평없이, 단지 물 한 컵 마시고 해 줬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서 반바지를 한 벌 사고, 면티 두개를 덤으로 구입한 후, 어느 날 저녁, 그를 초대해서 선물로 건넸다. 감사의 표현으로...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남자는 세 벌의 옷 선물로 눈이 휘둥그레지며, 도대체 이런 많은 옷을 왜 선물로 주느냐며 되려 깜짝 놀래 뒤로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미국에서 이런 옷선물은 아주 개인적이기 때문에, 서로 연인이 아닌 이상은 하지 않는다며, 세 벌을 모두 물리고, 감사하는 마음만 받겠다며 자리를 떠버린 것이었다.
-문화의 차이-
언니는 나에게 그 난처했던 상황을 이야기해 주며, 민망했다고 말했다. 언니는,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일을 아무런 대가없이 해 준 그 미국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늘 하던 대로, 고마움의 정도 만큼 옷을 선물했다. 하지만, 언니는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는 부담스러운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이 되고 말았다.
-과잉 감사-
미국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늘 배려없이 과잉감사를 하지 않았나 돌이켜 볼 일이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가치관을 알지 못하고, 내 가치관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길 수 있는 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