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7, 2011

[이명수의 사람그물] 세상에 무명씨란 없다

유명인들의 사진과 맛 소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간이 맞지 않아 주인에게 말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그거 현빈도 맛있다고 한 건데….” 그 말을 전하는 주인의 얼굴에는 의아함과 짜증이 역력하다. 폭발하지 않을도리가 없다. 유명인들의 취향과 내 입맛이 무슨 상관인가.
세상에 이름 없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무명씨는 유명인의 반대말쯤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 이분법적 인적 구성이 정점에 달한 사회다. 공인이란 개념도 지위에 걸맞은 책임과 권한에 의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유명하냐에 좌우될 정도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인 여고생 가수에게 공인의 책임의식을 강요하고 해병대를 자원한 인기 절정의 연예인은 사회지도층 인사로까지 격상된다. 그렇게 따지면 신창원도 공인이고 뽀로로도 사회지도층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유명인과 무명씨의 관계는 병적일 정도로 비대칭적이고 비상식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편부당한 공생관계 같다. 무명씨들은 닥치고, 찬양하고, 복종하라는 구조다. 투명인간 취급한다.
로마의 귀족들은 노예가 있건 말건 그 앞에서 모든 일을 했다. 심지어 배설이나 섹스까지 거리낌없었다. 노예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짐승이나 투명인간 정도로 취급해서 그렇다.
세계적 핵물리학자가 피교육생 신분으로 앉아 있는 민방위 교육장에서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강요하는 강사에게 자신 앞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은 무명씨다. 자기보다 생각이 짧고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투명인간에 가깝다. 계몽질과 훈계질의 대상에 불과하다. 유명인으로 대변되는 권력자들은 무명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알리기만 하면 흰 꽃도 까망 꽃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착각이다.
한 미국 영화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민간인 학살까지 서슴지 않는 상원의원은 정의와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은 내가 정한다”며 코웃음 친다. 무명씨들을 투명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발언이다. 공정<사회를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로 재규정하는 시중의 우스개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도 그래서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명씨로 취급받을 때 그 모욕감과 낭패감은 제어하기 어렵다. 종내엔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 아닌 한 시인의 절규처럼 ‘가슴이 못질을 알아본 날’들로 살아갈 수는 없다.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은 사람을 분노케 하고 무릎 꺾이게 한다.
살아생전 작가들의 스승으로 추앙받던 한 소설가는 ‘이름 없는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따위의 표현을 엄하게 질책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다는 것이다.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어서 모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이르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명씨의 개념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사회는 절대로 지속되기 어렵다. 유명인 정우성이 땀을 닦은 손수건엔 열광하고 무명인의 피눈물이 묻어 있는 손수건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란 단언컨대, 없다.


데이비드 소로는 <시민불복종>에서 “우리는 시민이기 이전에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시민이라는 역할 이전에 단독자로서 자신의 인간적 품위와 존엄을 지키는 게 더 우선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쌍용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만난 몇몇 이들은 유명하지 않지만 내 가슴에 태산처럼 우뚝하다.
 고동민, 김득중, 이창근, 권지영, 조은영, 이정아, 최제천, 송소연….
 저 홀로, 인간의 품위와 존엄의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들을 단지 이름 없는 해고노동자, 가족, 자원봉사자, 치유자의 큰 테두리에서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봐야 안다. 주변의 다정한 이름을 열 명만 되뇌어보시라. 그 이름들이 모이면 결국 그것이 당신의 얼굴이다. 세상엔 단 하나의 무명씨도 존재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소스라치게 깨닫게 될 것이다.
마인드프리즘 대표·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Monday, May 9, 2011

사소한 기쁨

아침에 침실에서 나오다, 옆 테이블에 물 한 병을 보았다.
남편이 어젯밤, 자신의 물을 가져오며 내게도 한 병 가져다 준 것인가 보다. 그것을 보고 있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말없이 가져다 준 남편...
엊그제 속상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을 때도, 이불 밖으로 내 발이 나와있자, 조용히 이불을 당겨 나를 덮어준다..

어떨 땐, 나 혼자 너무 외롭다고 느끼면서 자상하지 못하다고 남편을 탓하지만, 이렇게 작은 것에 내 생각을 해주는 남편을 보면, 다시 내가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도 남편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그의 걷는 모습조차 귀여운 걸 보면, 우린 정말 천생연분인가 싶다.

남편을 사랑한다...


미영, 5/9/11

Sunday, May 8, 2011

공지영 Twitts

  • 바쁘다고 기도와 침묵 명상을 며칠 거르면 확실히 마음 바닥이 얕아져 자주 끓고 식는다. 비내리는 토요일 침묵이 참 고맙다.
  • 스물 세살무렵 내삶은 이제 끝장이라생각 했었다 그 한편 이렇게 끝내지는 말자,라는 생각도 함께. 그렇게 끝인줄 알았던 수많은 모퉁이를 돌아 나 여기 서 있다. 형식이나 남의 눈이 아니라 내 진심을 찾아 헤매었지만 아직 나를 모르겠다. 그래서 삶은 신비롭다.

Meeyoung, 5/8/2011



    Friday, May 6, 2011

    서태지와 이지아..



    내가 이 기사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한 때 사랑"보다는,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왔던 사랑" 때문이었다.

    15 살과 21살의 어린 나이에 만나 3년 간의 장거리 사랑을 키워오다, 결국 함께 있기 위해 결혼을 하게 된 두 사람. 그야말로 대박행진이었던 모든 영광과 미래를 벗어던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떠난 남자, 서태지와 ,그리고 그 후 그 사람의 숨겨진 부인으로 14년을 살아왔던 여자, 이지아.

    두 번째 나를 더 충격에 빠뜨린 것은, 첫 수상 공식석상에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는 이지아 때문이었다.  이지아는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에 참여한 후, 흰 색 드레스 옆 모퉁이에 서태지의 이름을 뒤로 새긴 후, 그 실오라기를 길게 늘여뜨려 본인의 두 번째 손가락과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마치 그 사람과의 사랑과 인연을 천 년 넘게 간직하고픈 여인의 마음처럼..

    ---

    이제 이미 청년의 사랑이 추억으로 느껴지는 나에게, 그들의 애태웠던 사랑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다름 아니라, 그 이름의 실오라기와 손가락의 연결..이었다. 그 자체로 이지아의 예술적 끼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  오 마이 갓...! 그녀의 그 감성적 재치 발랄함이란...

    이런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을 타고 난 사람을 접할 땐 나도 모르게 부러움을 넘어서서 동경과 존경이 앞선다.

    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미영, 5/6/2011

    Tuesday, May 3, 2011

    What Matters Most.

    The best expression of love is time.  Time is your most precious gift because you only have a set amount of it. You can make more money but you can't make more time. When you give someone your time, you are giving them a portion of your life that you'll never get back. Your time is your life. That's why the greatest gift you can give someone is your time. Whenever you give your time you're making a sacrifice, and sacrifice is the essence of love.

    -from The Purpose Driven Life.

    미영. 5/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