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27, 2010

조정래 인터뷰 기사 중..

조정래 삶의 재미는 가치관과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나이 ‘사십에’ <태백산맥>으로 시작해 <한강>을 끝내고 나니 내 나이가 육십이에요. 머리 다 빠져버리고, 위궤양을 비롯해 탈장까지 대여섯 가지 병을 앓으면서 그 글을 다 썼어요. 한 달씩 앓아야 했던 몸살 정도는 병도 아니었죠. 글을 쓰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 일어나지 못하고 이대로 죽지 싶은 고통 속에서 잠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건 잠이 아니에요. 죽음이지요. 그래도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나는 그때 ‘이건 반드시 내가 써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올바로 쓰면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었죠. ‘글감옥’이라는 말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내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그렇게 한 결과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태백산맥>을 읽은 수많은 독자가 공통적으로 내놓는 독후감이 ‘우리 역사가 그런 식인 줄은 몰랐다.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럽니다. 이만하면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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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나는 집사람하고 결혼할 때 두 가지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다행히 문학 장르가 같지 않아서 결혼할 수 있다. 같은 장르면 부부가 비교된다. 그런데 시와 소설이기 때문에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둘째, 서로 작품을 존중하되 절대 간섭하지 말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셰익스피어가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많은 여자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죠. 김초혜라는 한 인간이 갖는 가능성은 무한해요. 김초혜는 나에게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에요. 사회문제, 역사문제, 인간의 문제 등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새로운 모습이 펼쳐질 때마다 ‘저 여자가 저런 면이 또 있었구나’ 싶어 깜짝깜짝 놀라요. 그런 새로움 속에서 나는 김초혜를 죽을 때까지, 그리고 저승에 가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한 여자가 지루한 것은 그 사람의 면면을 발견하지 못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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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아니라 철저한 관리의 결과요. 술 마시면 시간낭비가 심하잖아요? 마시면서 하루가 가고, 술 깨느라 그 다음날이 가고, 또 글 쓸 컨디션 회복하느라 하루가 가고, 사흘이 없어져 버려요. 사흘이면 하루에 30장씩 잡으면 90장이 날아가요. 그래서 글 쓰는 20년 동안 한 잔도 안 마셨어요. 그리고 <한강> 끝낸 2002년 담배도 끊어버렸어요. 채식에 소식하고 국민보건체조를 하루 세 번씩 하고…. 또 매일 산책하고 그러니 성인병에 걸릴 리 없어요. 내가 67세인데, 아무런 병이 없어요. 우리 아버지가 84세까지 사셨고, 우리 어머니가 지금 96세인데 건강하시니 두 분 수명 더하기, 나누기 2 하면 나는 90세까지는 수명을 보장받은 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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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는 동갑인 아내 김초혜 시인과 동국대 국문과에서 만나 연애하다 결혼해 44년째 함께 살고 있다.

Saturday, October 23, 2010

카톨릭.

"아마도 촬영팀 쫓아냈던 성당의 압력이 대단한 모양이에요. 카톨릭이 품이 넓다 생각했던 것이 오해였나봅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성당에서 언약식을 가지려했는데, 성당 측에서 교리에 어긋난다며 협조하지 않은 일에 대해 김수현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말이다.


김수현의 생각은,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일맥상통했다. 실은, 2009년에 개신교, 또는 기독교, 또는 교회라는 곳에서 받은 상처를 카톨릭을 통해 치유받길 바랬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듯 허황된 바램이었음을.. 세례를 받은 후에 절실히 깨달았다. (너무 늦었나????)


카톨릭은 개신교보다 더 많은 규율과 법칙으로 사람들을 규제하고 옭아매며, 교리의 이름으로 삿대질과 인두질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점점 더 그 교리를 알아갈 수록 느낀다. 형식이 내용을 강화시킨다면서, 형식을 강조하고, 껍데기 뿐인 신앙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복을 바라는 사람들.. 교리가 복잡하고 법이 까다로운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을 신앙의 척도로 삼는 사람들...


지겹다.
종교란 무엇인지... 늘 생각해도 답이 어눌한, 어려운 문제이다.


미영.



Monday, October 18, 2010

퍼온 글

Each of those points can be applied to living a healthy lifestyle, specifically making changes from self-abusive food behaviors and inactivity, working toward a healthy relationship with food and exercise.
  • Why is your rear-view mirror smaller than your windshield? Because the past is only a point of reference. Don't live life looking in the rear-view mirror.
  • Change begins in the mind, bettering yourself begins here and now. Understand that success is an inside-out job.
  • When you believe you can do something, you have the courage to move forward despite being afraid. Armed with a great attitude, decide to become a participant in life and to explore your potential.
  • Attitude is a deliberate choice. Almost always, you have a choice as to what attitude to adopt. There is nothing in any normal situation that dictates you must react one way or another. If you feel angry about something that happens, that is how you choose to feel. Nothing in the event itself makes it absolutely necessary for you to feel that way. It is your choice. And since you do have a choice, most of the time you'll be better off if you choose to react in a positive rather than negative way.
  • Everything can be taken away from a man but one thing: the last of the human freedoms-to choose one's attitude in any given set of circumstances, to choose one's own way.~Victor Frankl
  • Success is a choice, we can only climb as high as the ladder we select.
  • All behaviors begin with thought. Don't try to change the behavior but the thought behind it. Transform thought=transform behavior
  • Don't Make Excuses~Whenever you think of an excuse, ask yourself if there has ever been someone else who has been in the same situation and who has succeeded despite it. When move beyond the whining and justifying, you'll find that the answer is always "yes." Someone, somewhere has had it worse than you and still succeeded. You can succeed too, the moment you decide you want a goal instead of an excuse. Refuse to make yourself a victim. Victims don't have to take action. They are too busy dwelling on injustice and being bitter. Remember you will always be able to make up an eloquent excuse but there are no excuses that last.
[from http://lovetoeathatetoexercise.blogspot.com]



존중

살아온 날들에서 나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비단 배우고 싶은 것들 뿐 아니라, 배우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자연스레 체득된다.

나는 때로 지나치게 남을 챙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우리 아빠에게서 자연스럽게 배운 행동 같다. 아빠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먹거리를 강조하고, 식탁 위에서 원하지 않는 반찬도 밥 위에 얹어주시는 것을 습관처럼 하시던 분이다. 난 사실 그런 아빠의 행동에 짜증을 많이 냈었고,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도 많이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이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을 땐, 어느 새 나는 아빠처럼, 그이가 원하지 않는 반찬을 먹으라고 반강요식으로 채근한다.

엊그제는 함께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갔는데, 거기서 또 엄마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늘 아빠 옷을 직접 사오셨고, 패션에 대해 거의 무심한 아빠는 그런 엄마께 한번의 불평없이 즐거이 입으셨다. 매번 옷선물 받는 사람처럼 기뻐하면서.
그것은 내게도 영향을 미쳐,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이후로 막내에게 옷을 자주 사주곤 했는데, 늘 나 혼자 가서 골랐고, 어쩌다 동생을 데려가도 동생의 취향은 깡그리 무시한 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서 입혔다. 가끔 동생이 제 옷을 사왔을 때 내 맘에 안들면, 동생 몰래 버리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내게 남편이 생기면 꼭 옷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입힐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 터졌다.
그이는 내 스타일이 싫단다. 내가 우겨서 들고 있는 옷들을 보더니 짜증을 내고, 급기야 화로 번져서 나에게 인상을 구겼다.

왜...?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엄마가 사다주는 옷 그냥 즐겁게 입으시는 '아빠처럼'은 안되는 것일까. 왜 내게 화까지 내야할 정도로 그것이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내가 본인의 권리를 침범한 것도, 본인의 패션스타일에 100% 반하게 옷을 고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렇게 싱글라이프처럼, 나는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색깔만을 고집할까...?
이런 것도 기선제압의 하나인가?

만약 나라면, 내가 비록 마음에 덜 차더라도, 그이가 원하는 옷이라면, 오케이 하며 입을 것 같다. 그것이 그냥 나를 위해 골라 준 상대방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에 대한 배려로 나타나는 행동 아닐까.

이런 사소한 문제를 '사랑'의 유무 파악으로 까지 몰고 가는 건 너무 과했다 손 치더라도, 적어도, 존중의 문제는 될 것 같다.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 남편....
과연, 이대로 좋냐는 말이다.


미영.

Wednesday, October 13, 2010

죽은 맹모(孟母)의 사

오래 전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가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사립 웰튼고등학교에 부임한 키팅선생 (로빈 윌리엄스)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문학 서클을 통해 부모의 과도한 기대 속에 모범생으로 “박제”되어 가는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각과 폭풍 같은 활력을 제공하지만, 끝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학부모와 학교의 반대에 부딪혀 교단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할 때, 학생 하나가 책상 위로 올라가 외친다. “캡틴, 마이 캡틴!” 권위와 복종의 상징인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첫 인사를 던졌던 키팅에게,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노라는 제자들의 뜨거운 화답이자 존경에 찬 헌사이다.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도 하나하나 책상을 딛고 올라서서 목 메인 소리로 외친다. “캡틴, 마이 캡틴!” “캡틴, 마이 캡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영화는 책상을 밟고 일어 선 학생들과 쫓겨나는 키팅선생 사이의 애틋하고도 우애어린 공감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내 가슴을 더욱 후벼 팠던 것은 그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고개 수그린 채 이도 저도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되 여전히 눈치만 살피며 차마 책상을 밟고 서지 못하는 또 다른 절반, 그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숨을 죽이고 있다. 키팅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걸음을 걸어라. 너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너만의 걸음으로 너의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그 말을 부정하기엔 양심이 찔리고, 따르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 이도 저도 못하고 빨리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린 채 고개 숙인 그 교실의 학생들은 어쩌면, 일상에 쫓기며 이런저런 이유로 주어진 삶의 틀을 부수지 못하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위장전입, 구차한 변명과 반론
인사청문회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맛이 쓰다고 말한다. 위장전입, 투기, 탈세, 위장취업…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식상한 레파토리지만, 그것이 거의 예외 없이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의 오래된 관행이자 삶의 방식이었다는 걸 재삼 확인하는 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한다. 청문회에 선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언론인과 기득권 세력은 이야기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 너희들은 그만한 흠이 없느냐, 죄 없는 놈 있으면 돌 던지라는 반격이다. “사소한 도덕적 흠결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도 한다. 도대체 이들에게 공직자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이 되면 따르고 불편하면 벗어던지는 집념과 끈기? 그렇게 막가파식 성과주의로 일을 밀어붙이는 공직자들 때문에 국토가 유린되고 실업자가 쏟아진다는 걸 그들은 정말 보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압권은,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맹모삼천이 이들에겐 큰 방패막이이다. 맹자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당장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을 것이다. 맹자엄마는 위장전입이 아니라 실제로 이사를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받아치지만, 이 위장전입에 관한 한 반론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혹자는 “공직자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나는 데 예외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위장전입으로 인해서 실제 거주자의 자녀들이 손해를 보니 용인할 수 없다고도 한다. 강남8학군에 셋집조차도 장만할 여력이 없는 이들은 그럼 입 다물고 있어야 할까. 다른 한편에선, “위장전입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등록법에 반하는 엄연한 위법이고 이들이 처벌받지 않은 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문제의 본질은 아닌 것 같다.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을 가한다 해도 가진 자들의 이런 관행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위법인 건 알지만, 부모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달려들면 더더욱 심란해진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부모마음”을 붙들고 늘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락없이 인질이 된다. “자식 가진 죄로” 고개 숙이는 이들에 대한 동정론도 무시할 수 없다. 위장전입의 변이나, 그것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반론이나 공히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좋은 학군에 보내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어 못하고 위법이라 못했다. 근데 늬들만…” 하는 분노와 억울함, 동경과 질시, 선망과 자괴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을 부모의 과욕이 빚은 사소한 흠결정도로 치부하는 이들과 정면승부를 벌이려면, “그렇게 자식 교육 시켜서 뭘 가르치려 하느냐, 그런 방식으로 세습되는 부와 학벌과 연고가 우리 아이들 모두를 황폐하게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습된 부와 학벌과 연고를 물려받는 아이에게나, 그렇게 물려받을 아무 것도 없어 소외된 아이들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없어서 못주지만 있어도 주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부모들이 많았다면, 위장전입 문제를 놓고 이렇게 지지부진한 논쟁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을 밟고 일어서지 못한 절반의 학생들처럼, 내 안에도 “부모욕심”을 가장한 찌질한 속물근성이 남아 있는 한 이 문제는 그리 단칼에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맹모(孟母)는 죽고 삼천(三遷)만 남아
많은 이들이 능력만 되면–아니 능력이 안 되면 집을 줄이고 월급의 대부분을 차압해서라도– 자식을 “좋은” 곳에서 가르치겠다고 열망한다. 미국 뉴저지 버겐 카운티나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학군 좋다고 알려진 곳은, 자식 공부를 위해서 미국행을 택한 한국 학부모들로 늘 바글바글해서 아무리 집값이 침체해도 아파트 월세는 떨어질 줄 모른다. 아예 “자식을 위해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입시지옥에서 아이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노라고 이야기한다. 과외비 부담이 만만치 않으니 어차피 돈 들어가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그나마 아이가 “기를 펴고 밝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오고 싶었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어서 기를 펴고 밝게 자라고 있을까. 그런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짓눌리고 기죽은 채 이방인으로서의 좌절감까지 더해 방황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생이 뭘 하든 폭언하지 않고 체벌하지 않는 교사, 토론과 반론이 자유로운 수업, 촌지 없는 학교, 편리한 도서관과 체육시설… 모든 교육환경이 다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바로 한국 부모들의 “자식 욕심” 때문이다.
한인 타운에는 방과 후 아이들을 학교에서부터 버스로 싣고 와서 밤늦도록 붙잡아두고 공부시키고 숙제시키는 학원들이 즐비하다. 대치동 무슨 무슨 학원에서 “직수입”한 강사가 있다고 광고하는 전단이 여기저기서 날라든다. 내 미국 친구 중의 하나는, 문학을 전공한 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영화비평을 쓰는 일을 하는데 부업으로 한국 아이의 과외교사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내게 그는 불쑥 “한국 엄마들은 원래 그래?”하고 묻기에 무슨 일이냐 했더니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가 꽤 똑똑한데 작문만 시키면 영 맥을 못 춘다는 것이다. “영어가 부족해서 그러겠지”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아이가 뭐가 자기 생각인지 모르는 것 같단다. 아이가 너무 억눌려 지내는 것 같아서 부모와 상담을 하려고 했더니 그 부모는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사람들인데, 그저 하는 말이 “아이비리그에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통역으로 삼아 부모와 의사소통을 해야 했던 그 친구가, 어렵게 에둘러서 “아이비리그 말고도 좋은 학교는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 부모는 “우린 자식 교육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리고 왔다. 이 아이는 아이비리그에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더란다. 그 말을 영어로 전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더 이상 길게 얘기할 수 없더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 부모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세탁소 일을 하며 아이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는데 입만 열면 하는 소리가 “아이비리그타령”뿐이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남몰래 혼자 앓고 있는 것 같다고 친구가 말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어 식어빠진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바뀐 건, 서울대에서 아이비리그로 목표가 상향(?) 조정된 것 뿐이다. 한국의 촌지문화가 지긋지긋하다고 하면서, 몇몇 한국 엄마들은 아이의 담임선생한테 한국행 비행기표를 덜컥 사주는 엄청난 선물공세를 하는 바람에 이후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된 다른 한국 엄마들이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소리도 들었다. 맹자 엄마가 맹자를 위해서 한 것이 이사만은 분명 아니었을 터, 부박한 내 지식으로 맹자 엄마가 평소에 맹자를 어떻게 가르쳤을지 궁금할 뿐이다. 맹모는 죽고, “삼천(三遷)”신화에 열광하는 부모들만 남아있으니 이래서 어느 세월에 맹자가 나오겠나 싶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자식을 두고 장담하지 말라고 하니, 나도 섣불리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겠노라 공언하기는 겁난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일이다. 유치원 교사와 정기적인 학부모면담을 하는데, 그 선생님은 너무나 진지하게 “이 아이가 작년 가을까지는 1에서 10까지 셀 줄 알았는데 지금은 1에서 20까지 세게 되었다”며 “커다란 진보”를 했다고 칭찬을 해댔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깔깔 웃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시험을 쳤는데 단어시험에서 아이가 꼴찌를 했다. 미국에서 나기는 했어도 집에서 한국말만 쓰니 영어시험을 못 보는 건 당연한데도 공연히 속이 끓고 조바심이 났다. 어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내게 선생님은 “아이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히려 들지 말고, 그냥 놀면서 스스로 익히게” 하란다. 풀밭의 딱정벌레를 보면서 몇 마리인지 같이 세어 보고, 장을 보러 가면 식료품 앞에 쓰인 라벨을 읽게 하고… “그래,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상의 계시라도 들은 양 마음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그 이후로도 난 늘 갈팡질팡이다. 사실 놀면서 익히게 하는 게 품이 더 든다. 시간도 없고 내 일로도 피곤한데 애 데리고 다니면서까지 가르쳐야 한다니… 더군다나 내 스스로 어린 시절 그렇게 공부를 배워 본 기억이 없으니 그러면 공부를 잘하게 될 거란 확신도 없다. 석 달 방학 내내 천방지축으로 뛰어놀기만 해서 새까매진 아이를 보면, 책상 앞에 붙들어 앉혀 다 까먹어버린 단어라도 써보게 해야 하지 않나, 맹렬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결국 내 자신에게 돌아오는 근본적인 질문은, “나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하는 것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의 바람은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행복할 줄 아는 것도 체험과 훈련이 필요할 터, 행복해 지는 법을 스스로 느끼고 배우게 하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한편에서는 “일단 경쟁력이 있어야 행복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쉽사리 지워지질 않는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도 출세를 하면… 그럼 행복해 질까,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확실히 그건 아니다. 그렇게 도리질을 치고 나도 돌아서면 또 악마의 속삭임처럼, “이러다 내 아이만 뒤떨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고 탄식하던 차에, 한국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한테 설득이나 훈계하려고 하지 말고 제 뜻대로 하도록 믿고 기다려줘 봐.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래야 너도 나중에 덜 힘들 거야. 먼저 애 키운 엄마의 뼈아픈 충고이니 명심하시압.”
캡틴, 마이 캡틴
살면서 이런 저런 일들로 중요한 결심과 결단을 내려 본 적이 있다. 어렵게 들어간 좋은 대학에서 잘릴지도 모르는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취직을 제대로 해야 어머니 부담을 덜텐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하면 사람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텐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몽땅 정리하고 유학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교적 담 크게 관성을 깨는 결단을 내려 봤다고 자부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새록새록 갈등에 부딪히고 매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결단에 직면한다.
나보다 먼저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슷한 마음고생을 겪고, “무엇보다도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라서”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고 담담히 말하는 친구들은 내게 하늘같은 선배들이다. 그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자식의 성장통 만큼이나 부모도 앓았을 것이고 갈등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받아보지 못했던 행복한 배움을 꿈꾸며, 학벌과 재산으로 자식을 뒷받침하고 싶은 탐욕을 다스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에 진정 어린 존경을 보낸다. 다그치는 부모의 조급증이 자식의 성적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식이 괜찮은 학벌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굳게 믿으면서, 나보다 먼저 책상 위에 올라서서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깨어있는 부모들을 다시 생각한다. 조금 미적거리고 꾸물대더라도 언젠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책상을 밟고 당당하게 올라서지 않을까.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이고 싶다.
-이 글은 8월 28일 <한겨레> 에 실린 기고의 원문입니다. 편집자 이 진순


“이념적 소비?”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

‘파워 트위테리안’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개인적 관심이나 회사경영 전략 등을 수시로 트위터에 올리며 수많은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젊은 CEO의 이러한 ‘소통경영’의 모습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최근 트위터상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정 부회장을 발언을 두고 논쟁이 벌여져 화제를 모았다.
‘이마트 피자’ 설전
이마트가 시중의 피자보다 크기는 크면서 가격은 저렴한 즉석 피자를 판매하여 폭발적 매출을 올리는데 대하여, 네티즌들이 이러한 행위는 중소 피자가게의 몰락을 초래한다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비판을 제기하자 이 ‘시장 강자’는 냉정하게 반박했다. 즉,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많은 분들이 재래시장 이용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고 어차피 고객의 선택이다.”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라는 조소와 함께.
이마트는 롯데슈퍼나 홈플러스처럼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을 직접 벌이지는 않고 있다. 대신 이마트는 동네상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도매유통업에 진출하고, 이마트 내에서 판매 품목을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사회적 쟁점이 된 SSM 문제에 직접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실속은 SSM 진출 대기업과 똑같이 챙기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정 부회장의 트위터 답변은 대기업과 중소상인과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 대기업 CEO의 직설적 반응이었기에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중소상인의 생태계를 살리는 윤리경영을 하라는 호소는 정 부회장에게 먹히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나온 정 부회장이 ‘대기업 프렌드리’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현재의 경제 질서 속에서는 대기업과 중소상인 사이에 공정경쟁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이 때 소비자의 선택은 사실상 시장 강자에 의해 조종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그가 현행법상 허용되는 이윤추구를 그만 둘리도 없다. 이제 공은 국가와 시민에게 와있다.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
정 부회장이 ‘이념’을 말하니 헌법의 경제이념부터 보자. 헌법 제119조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은 자유경쟁의 이름 아래 시장 약자를 몰락시키는 경제질서를 상정하지 않는다. 일찍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자와 소를 위한 하나의 법은 억압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사자와 소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고 자유롭게 경쟁하라고 하는 것은 사자보고 소를 잡아먹으라는 얘기와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칸막이를 만드는 국가의 역할이 긴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시장 강자와 시장 약자 사이에 칸막이를 만드는 시늉만 하고 있다. 예컨대, 이명박 정권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확장될 초기 전혀 규제할 생각이 없었다. 이후 중소상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화급하게 규제를 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현재 중소기업청을 통한 사업조정권고는 1년에 5건 정도만 이루어지고 있다. 6.2 지방선거를 앞 둔 지난 4월, 재래시장의 경계로부터 500m 이내는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기업 직영 SSM과 프랜차이즈형 체인점포를 사업조정대상에 포함시키는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선거 후 한나라당은 입장을 바꾸어 대중소기업상생촉진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당내에서 SSM 규제시 WTO 제소가 우려된다 또는 FTA 체결에 지장을 준다 등의 주장이 나온다. 도대체 어떠한 법적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미 OECD 다수 국가는 지자체 조례를 통하여 중소상인의 매출영향 평가, 지역 주민의 동의를 대형 상가점포 신설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생각건대, 헌법 경제조항의 이념이 구현되려면, OECD 나라의 예를 참조하여 SSM 규제 법률 제개정 등 중소상인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정부와 의회에 요구하고, 이러한 제도개선을 반대하는 정치인 낙선 운동을 벌이는 등 주권자 시민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념적 소비’, ‘착한 소비’를 하자
한편 시민은 정 부회장이 비웃는 ‘이념적 소비’를 보란 듯이 실천해야 한다. 가격과 편리함만을 기준으로 구매를 판단하는 소비행태에서 한 걸음을 벗어나 보자. 시민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문어발’을 뻗으면 화를 내면서, 다른 분야에 진출한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는 “싸고 질 좋다”며 애용하는 모순을 종종 드러낸다. 사실 이러한 즉자적 선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리고 중소상인들도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이 재래시장, 동네 상점, 동네 카페, 지역생산자조합이 만든 ‘로컬 푸드’ 등을 외면하고 대기업 백화점, SSM, 대기업 소유 프랜차이즈 카페, 대기업 생산 음식 등을 향해서만 달려갈 경우 그 결과는 무엇일까(참조로 신세계는 스타벅스 코리아 지분의 50%를 갖고 있다). 대기업은 영역확장을 위한 ‘무한도전’을 계속할 것이고, 자본력과 유통망에서 비교할 수 없는 중소상인과 생산자조합은 계속 몰락할 것이다. 시민 사이의 ‘연대’는 붕괴하고 시장 강자에 대한 자발적 복종만이 남을 것이다. ‘소비자 주권’은 사라지고 시장 강자의 군림만이 남을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의 여파로 2010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전체 인구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은 25%를 넘는다. 이 수치는 다른 OECD 나라의 약 10%에 비하여 매우 높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금과 퇴직금을 가지고 자영업에 나섰다가 다 날리고 가족 전체가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민은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 닫는 이웃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미래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실 첨단 기술제품도 아닌 피자, 어묵, 떡볶이, 순대, 튀김까지 대기업의 것을 소비할 필요성이 어디 있는가. 정 부회장은 조소했지만, 시민은 위세부리는 이익과 힘의 논리 앞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해야 한다. 정 부회장의 말대로 재래시장이 소비자를 걱정하지는 않을 지 모르지만, 이마트처럼 위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사용하지 않는 ‘착한 소비’, 공정과 연대의 가치, 인간의 체온이 스며든 소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정 부회장도 당당히 재래시장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의 말대로 하자. 보란 듯이! 당장 모든 소비를 ‘착한 소비’로 할 수 없더라도 좋다. 지금 보다 조금씩 한걸음씩 ‘착한 소비’ 쪽으로 움직여보자.
“문둥이 콧구멍의 마늘 빼먹을 놈아!”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야박하게 이익을 챙기고 돈을 밝히는 사람을 보시면 경상도 사투리로, “에라이, 문둥이 콧구멍의 마늘 빼먹을 놈아!”이라고 쏘아주셨다. 자본은 그 본성상, 한센병 환자가 치료를 소망하며 콧구멍에 넣어 놓은 마늘까지 빼먹는다. 국가의 개입과 시민의 각성이 없을 때 자본은 고삐풀린 이윤극대화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시민이 주권자로서 헌법의 경제이념을 구현하는 법규 제정을 국가에 요구하고 동시에 ‘이념적 소비’를 실천할 때 정용진은 피자팔기를 그만둘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2010.09.27)에 게재된 시론의 원본이다.

말에 대하여.

    말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상태는 그 사람의 영혼에서 빚어집니다. 그러니까 말을 잘못한다는 것은 생각을 잘못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잘못하거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됨’, ‘마음씀씀이’가 더 근본 원입니다. 그러므로 말 잘못은 그냥 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이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는 생명을 사랑하고 행복의 날을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혀를 제어해서 악한 말,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꾸로 혀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제어할 생각을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거나 행복을 원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평화를 열심히 찾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생각도 말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말)에서도 새게 되어 있습니다.’ 내 본의는 그것이 아니었고, 본심을 못 알아준다고 넋두리를 해도 아무리 주장해 봤자 그것은 때 지난 변명일 뿐입니다.
- 김 진 목사(퍼온 글)




Tuesday, October 12, 2010

퍼온 글.

정혜신 심리학자의 프로이트 분석:
 “사람은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순서 심리적 발달을 하며 성장”하는데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성인은 소아적 의존성을 가진 미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항문기적 성향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강박적인 삶을 사는데, 그들은 세상을 경쟁의 원리에 따라 바라본다.” 반면 “남근기적 성향은 즐거움 자체를 추구한다. 경쟁과 완벽은 의미 없는 논리가 된다.”



퍼온 글-좋은 친구.

내 친구 준은 예쁘고 야무지다. 혼자 살림이지만 준의 집 세간은 언제나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걸 볼 때마다 그녀와 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실체는 비닐에 담겨 곤죽이 된 상추가 버젓이 가운데 칸을 차지한 냉장고, 구겨진 니트가 순서 없이 쌓인 옷장이 대변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준을 떠올리며 청소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녀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으로 살게 되었을 것이다.


요즘 친구 준은 이사를 준비한다. 전세 계약이 만료된 탓도 있겠지만,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글에 전념할 목적이 크다고 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집 구경을 다녔고, 거의 매일 입지조건이 열악하거나, 낡고 더럽거나, 주인이 깐깐한 집에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준의 마음을 흔든 집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 그녀는 기대 없이 집을 보러 나갔다 지하철역이며 마트가 지척인, 넓고 깨끗한 집을 발견했다. 전세보증금도 저렴했고, 수더분한 주인 내외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하지만 준은 며칠의 고민 끝에 그 집을 포기했다. 다 좋은데 북향인 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준은 집에 돌아와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아는 가장 현명하고 유머러스한 외국인인 그녀의 애인은 방위 때문에 좋은 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준의 이야기를 듣고 다소 괴상한 질문을 던졌다. “집은 원래 북향으로 짓는 거 아냐?”
준의 애인은 아랍인이었다. 여름 평균, 영상 40도의 사막국가에서는 수돗물조차 뜨겁다고 했다. 그 나라에서 집을 고르는 최우선 조건은 북향이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더 시원한 집이 아랍에선 최고인 거였다.

북향에 사는 남자와 남향에 사는 여자는 9년째 열애중이다. 준은 종종 애인을 만나기 전엔 자신이 못생기고 게으른 여자였다고 고백한다. 잘생기고 부지런한 애인 탓에 계절이 바뀌듯 아주 천천히 지금의 자신이 완성되었다는 거였다. 지금처럼 준이 내 곁에 있어 준다면 언젠가 그녀와 나를 가르는 4차원의 벽도 무너질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가 필요하단 거다.

강지영 소설가

***
나에겐, 좋은 친구가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미영.



우연

어젠 정말이지 아무 날도 아니었다.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 기분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좀 바빴을 뿐이었고, 전날 밤 꿈자리가 좀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더하여 좀 음악을 세게 틀었을 뿐이었다.
전날 빌린 디비디를 리턴하고 일찍 집에 도착해서 남은 일감을 처리할 생각 뿐이었다.

그 곳에서 그런 사고가 나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잠깐, 아주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
아주 잠깐...
맥도날드 앞에서 디비디 자판기에 리턴한 후, 좌회전을 하다가 꽝 한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아주 잠깐 어디론가 눈을 돌리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우연히 일어난 그 일은 내 생각을 점령하고, 결국 그 날 밤, 계획했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 체 침대에 누워야했다.

세상 살이, 절대 간단한 것 아니다.
늘 깨어있어야한다.
그리고, 늘 조심해야 한다.

아..
음악도 줄이고, 좀 더 운전에만 치중을 해야겠다.


미영.

Friday, October 8, 2010

공허함...

카렐 블릭센은 영혼의 고독을 과대포장하지 않는 대신 들판의 풀과 교우하며 나무들과 함께 밤바람을 호흡하며 살았던, 강력한 삶의 에너지를 발산한 사람, 주변 사람들의 평에 의하면, 3000년이나 살면서 소크라테스와 만찬도 나누었던 귀부인,예언자, 이야기꾼 같은 매혹과 엄청난 감흥과 에너지가 감도는 분위기를 가졌던 사람이라 한다. 


공허한 마음에 웹서핑을 하다 발견한 구절이다.
도대체 어떤 이들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걸까...
나에겐 왜 에너지가 부족한가.
그저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육체가 남아있는 모양새다.
열정적이고 촉촉한 느낌이 사라져버린 듯한....


무엇으로 다시 생동감있는 나를 만들 수 있을까??????






미영.

Saturday, October 2, 2010

퍼온 글...

Desire to achieve success is probably the number one requirement to actually achieving it. You have to want something strongly enough to see it to fruition. But desire without action is like a camera without film (or a digital camera without disk space)--it's only half the picture.


Yet action alone isn't enough either. Running around doing things that are not related to your goal certainly can't help you achieve it. When you are engaged in purposeful action, or action directed toward your goal, you are closer to achieving it. Sustained purposeful action is what lets you get there.
But often we feel hampered in taking purposeful action. We might feel unprepared or just plain scared.
Overcoming unpreparedness is easier than overcoming fear. To prepare yourself, you can always take a class, read, study, apprentice, or model someone who has already done what you want to do. Study, practice, learn from mistakes, keep going, and you will become prepared.

But what it you are afraid to take a chance? What if you are afraid to take a class, ask for help, or do whatever it is that you need to do in order to initiate your path toward success?
Unless you take a chance, you will continue to carry with you an unfulfilled desire. If that's what you would rather do, so be it. But if you want to see your desire fulfilled, you must stand behind your desire with sustained purposeful action, despite fear. After all, everyone experiences fear. Those who overcome it with courage--not fearlessness but courage, nerve, boldness, pluck, grit, and gumption despite fear--are the ones who succeed.
One of the best methods for overcoming fear is engaging in self-talk.
  • Tell yourself that you can achieve your objective by taking sustained purposeful action.
  • Tell yourself that you have the skills and abilities to achieve your goal.
  • Tell yourself that nobody ever died of embarrassment.
  • Tell yourself that a hundred years from now a mistake you might make today won't matter anywhere near as much as you thought it would.
  • Tell yourself that no one is better than or beneath you, that everyone is different and has his or her own talents.
  • Tell yourself that your own approval of your thoughts, words, and deeds is more important than the approval of others.
  • Tell yourself that by taking a chance, you give yourself a chance to succeed.
Go ahead. Use your verve nerve and take a chance, make a chance, and succeed!



Thursday, September 23, 2010

대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끄는 건, 대화이다. 그래서 숱한 사람들이 대화의 기술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오늘 오전, 종욱씨와 한 나의, '싸움을 자초한' 대화.
그리고 오후에 미경이와 한 나의, '허심탄회한' 대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수반하지 않으면 결국 상처를 남기거나,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의 잔여물을 갖게 된다.
그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일순간..

대신 마음의 문을 열고, 늘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간의 벽도 허물 수 있고,
내 안에 쌓여있던 스트레스조차 풀 수 있게 된다.

또한, 대화에서 보여지는 용기는,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는 듯 보여도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해주고 공감해 주는 데 있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미영.

Wednesday, September 8, 2010

가을.

오랜만에 아침에 테이블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새소리가 유난하다.
이제 더위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서늘한 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그렇군...
2010년도 이제 이렇게 가는군. 4개월 남짓 남겨놓았네..
푸후... 한숨이 나오는 걸 보면, 그렇게 잘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좀.... 즐겁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이런 날엔, 책 한권 집어들고, 어디 조용한 호숫가로 가고 싶다..


미영.

Saturday, September 4, 2010

짜증...

이 근원있는 짜증은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알겠는데 해결책이 안보인다.
후회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라도 하지 않으면 자책이 덜 들어 또 후회할 일을 저지를까 겁도 난다.

나로 인해 생긴 일,
다른 사람으로 인해 생긴 일,
똑똑치 못해 생긴 일,
잘 챙기지 못해 생긴 일.
원인은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짜증나...
원인을 알아도 문제 해결이 안보이니 더욱 짜증나....!


미영.

Tuesday, August 31, 2010

화요일 저녁.

이번 학기는 화요일이 가장 힘이 빠지는 날이다.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있기 때문에, 주차를 하기 위해서 적어도 8시까지는 학교에 와야한다. 7시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운 요즘의 나에게 화요일은 그야말로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기분이다. 대충 나갈 준비를 하고, 그이를 위해 스무디를 준비해 놓은 후 바삐 서둘러 문을 나선다.

학교에 도착한 후, 9시까지 수업 준비에 대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9시부터 1시까지는 쉴새없이 컴퓨터와 컴퓨터 사이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도와준다.

1시가 되서야... 이제 나의 시간.
대충 점심을 끝내고 나도, 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선 몇 시간 동안의 휴식이 필요하다. 이리 저리 웹서핑을 하면서 정신을 풀어주는 시간. 이런 시간이 없다면, 아마도 내 뇌줄이 파열될거야......!

이렇게 화요일을 보내고 나면, 나는 이미 한 주가 끝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가올 새 일 주가 부담스러움으로...


박 미영.

Monday, August 30, 2010

아침.

아침 일찍 책상에 앉는 일은 나를 즐겁게 한다.
더하여 향 좋은 커피는 완벽한 아침을 만나게 해 주고.

이렇듯, 아름다운 조화가 또 있을까.....


박 미영

Friday, August 27, 2010

병이다...

아침에 차 한 잔.
마음을 정화시켜주기도 하지만, 어제의 일을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차와 함께 인터넷의 뉴스를 읽기 시작하면, 최악의 경우엔 반나절이 지나버리기도 한다. 아....

이건, 무슨 병이지......


박 미영

Saturday, August 21, 2010

횡설수설..

이상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꼭 후회가 생긴다.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온데 간데 없고, '말'만 남은 것 같다.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일까...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지껄인걸까.
떨고 놓고 나면, 남은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구태여 만나서 주절거렸던 것일까...

그렇게 외로운가...
그렇게 말이 하고 싶은가...

오늘도...
남은 건, 후회 뿐이다.


박 미영.

Wednesday, August 18, 2010

세례 성사

드디어 6개월 간의 예비자교리를 마치고,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세례를 받게 되었다.

세례명은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에 대해 확실하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없지만, 디모데후서에 바오로(남편의 세례명)를 뒷바라지 했다는 말씀이 있다. 또한 이해인수녀님의 세례명이기도 하다.

주일 아침,  다섯 명의 다른 예비자들과 함께 본당의 맨 첫 줄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어떤 분이 와서 세례명이 씌어진 꽃을 가슴에 꽂아준다. 그제서야 내가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신부님이 모두 곱게 차려 입었다고 즐거워하며 미소를 지어주신다.

착잡한 마음으로 6개월 간의 시간들을, 아니 내 생애의 모든 종교적인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
나는 한 번도 애써서 절대자를 찾거나 떠나 본 기억이 없다.
늘 하느님의 인도를 통하여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내 삶을 조명해 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왔던 듯 싶다. 그래..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주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다니던 교회도 특별히 별 거부감없이 혼자 가곤 했다. 시키지 않아도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티비에서 보여주던 아침 만화 영화의 유혹을 물리치고 교회로 향했고,  그 예배당 벽에 길게 걸려있던 성경 말씀에 위안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그 땐 인생이 버거운 것도, 살아가는 것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몰랐던 때인데도, 왜 그리 그 성경 구절은 내 가슴에 새겨져 내 안식처가 되었던 것일까.......!
그 후로도 그 구절은 학생으로서 시험공부(?)에 힘들 때나, 친구들과 다퉜을 때도 내게 힘을 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든든한 백이 있는 아이처럼, 내게도 그렇게 믿는 언덕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입학한 후엔 자연스레 기독교 학생 연합회라는 곳으로 등록을 했고, 교회 내 모임에도 열심으로 참여했다.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자발적으로 동네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갔다.

물론 미국에 와서도 당연하게 교회를 찾았고, 우연찮은 기회에 미국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젊은 미국인 목사의 열정에 찬 설교를 들으며-- 40%도 들리지 않았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진한 감동에 전율하기도 했다. 더하여 미국은 선교와 전도의 본산지인 만큼 처음 온 외국학생들에게 매우 관대했고, 그렇게 봉사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느낀 교회 문화도 신앙적으로 매우 고무적이었다.

유학 생활 중 엄마가 많이 위독하셔서 잠시 귀국했다. 엄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불교와 무속에 빠져 있었는데, 작은 언니와 막내를 통하여 기독교로 개종하시고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신앙을 키우셨다. 놀라운 것은, 엄마는 투병 생활 중 한 번도 새벽기도를 거르시지 않으셨고,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 하루 하루를 열심히 생활하셨다. 살아 오신 날들을 돌아보며, 용서하기도 용서를 빌기도 하시면서, 천국을 향해 가는 즐거움으로 늘 성경과 찬송을 옆에 두셨다. 그것을 어여삐 보신 하느님은 엄마께 '권사'라는 직분을 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하셨는지, 걸을 힘도 없도록 아프셨지만, 엄마는 그 날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예쁘게 단장하고 색깔 고운 한복을 입으신 후 임명장을 수령하셨다.

병이 악화되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실 때도 늘 성경과 찬송을 떼지 않으셨고, 천국에 대한 기대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셨다. 한 동안 못 보고 지낸 작은 엄마가 왔을 땐, 힘이 없어 말을 잘 못하실만큼 몸이 좋지 않았지만, 권사가 됐다는 말은 마지막 유언처럼 힘을 내서 남기셨다. 임종의 순간까지 하느님과 함께 하셨던 엄마는, 엄마가 그렇게 바라셨던 것처럼 천국에 가셨으리라 확신한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엄마가 못다 하신 봉사활동을 조금이나마 대신 하기 위해 한국 교회로 옮기고 그 곳에서 하느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한 전산 작업--주보와 설교 자료들을 맡아서 열심히 일하기도 했다.

그래...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믿었던가..
한 목사가 내게 보여 준 충격적인 '축재'와 '사이비 교주'와 같은 행각은 지금까지 내가 지녀 온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무자비하게 깨뜨리고,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에 뿌린 내린 한국 교회의 실체를 알아가면서 그 폐단들 앞에서 망연자실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적어도 성직자는 금욕을 하며 축재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앙망해야 한다는, 당연하게 가져왔던 내 가치관은 현 한국개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실행할 수 없는 어려운 모습일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고질적인 폐단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도저히 개신교를 내 신앙으로 뿌리내리기 힘들었다.

남편의 가족이 모두 카톨릭이고, 어머니는 늘 내가 개신교인 것을 걸리적거려 하셔서, 과감히 카톨릭으로 개종을 시도하고.. 6개월의 교리 공부를 마친 후, 드디어 세례 성사를 받은 것이다.

*
종교..
종교가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신앙인으로서 유일한 하느님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내 종교 또한 많은 종교 중의 하나인  단지 '종교'일 뿐인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고 앞으로도 나를 지켜주실 하느님을, 나는 믿는다는 것이고, 유일하게 존재하심도 믿는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종교인이 아니고, 열심히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종교인일 것이다.

내 종교는 내게 힘을 주고, 살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주고, 장군의 갑옷을 입혀 두려움을 물리쳐 주고, 판단이 흐려질 때 마다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나를 강하게 한다. 또한 나를 편협하지 않게 하고, 내가 마음의 평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나를 돌아보게 한다.... !


박 미영

Friday, August 13, 2010

신뢰

오랜만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면서,
School of Education 에 있는 한국인 교수를 만나기 위해 JRP hall 로 향했다.
106 도가 넘어가는 날씨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뜨거웠다.

한눈에 전형적인 '열공파'로 보이는 교수는, 이미 걸어온 자신의 인생 여정과 비슷한 길을 가려는 나를 위해 한 시간 반을 할애해 주었다. 가능한 한 많이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경험담을 알려주고, 자신이 그 자리에 있게 된 이유 등을 알려주었는데, 들어보니 참 열심히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등생 특유의 집중력과 비사교성이 농후하게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공부벌레들의 특성인지라... 그래도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과는 다르게 유창한 영어 실력이 대화 중에 여실히 드러난 것은 의외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교수는 본인의 연구 이외엔 '관심 분산'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하여, 딱히 조력자가 필요하지 않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기에,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거나 내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임이 대화를 끝내며 방을 나서는 내게 눈을 들지 않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깨달았을 뿐이었다.

다시 뜨거운 태양 빛을 향해 나서보니 더위에 숨이 턱 막힌다는 사실이 내 진로에 대해 턱 막히는 막막함 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

**
저녁 나절에 가게로 찾아 온 마리아 언니네와 같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투고해 오라고 종욱씨가 전화를 했다. 대충 중국 음식을 4인분 사서 가게로 가보니, 전기공사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다. 마리아 언니와 일요일에 있을 세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신부님과 성당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언니가 참 가족같이 느껴졌다. 때론 나와 의견이 다르고,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고지식한 면이 너무 강한 언니가 답답하기도 하고 싫기도 했는데, 뭐 그게 나 뿐이랴.. 언니도 내가 싫기도 하고, 건방져 보이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한결같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언니 모습에 참 숙연해질 때가 많다. 나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감정의 시이소오에 오래 타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늘 한결같다는 것..
그 자리에 항상 있는다는 것..
어쩌면 신뢰를 쌓는 첫번 째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박 미영.

블로그를 개설하다...

나의 블로그를 정의:
  • 살아가는 것이 녹녹치 않은 현실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기록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 나를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한 나의 작은 시도.
  • 일상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여 '잊혀지지 않는' 나의 자취를 남기는 곳.
  • 진실과 진리, 그리고 추측과 사실 사이에서 나의 균형을 찾는 곳.
  •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그릇을 넓히기 위한 장.
  • 심심할 때마다 들어와 끄적이는 나의 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