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3, 2012

엄마는 나를...

오늘 이제민 신부님의 글을 읽다, "나는 주변을 설레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면서 태어났다." 는 문장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탄생을 생각해 보았다.


2남 3녀의, 3녀.
위로 언니 둘, 그리고 밑으로 남동생 둘.
엄마는 태몽부터 남달랐던 내가 사내아이이기를 무척 바라셨다. 엄마와 아빠는, 나의 모든 증상(?)이 아들이었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 머리가 커서(?), 드디어 아들을 갖게 되신 줄 알고, 엄청 기대 만빵이셨다. 그런데, 나와보니... 딸이었던 거다.


그 후, 다시 아들을 낳기 위한 일념으로, 급히 임신을 하시고, 드디어 고대하시던, 아들을 얻으셨다. 너무나 너무나 귀해서, 아예 무릎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던.... 그 아들...


그 말씀을 하실 때, 나는 가만히... 생각했었다.
그 때, 두 살이었던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요즘도... 아주 가끔.. 나는 생각한다.
엄마품이 너무도 필요했던 두살박이, 조용하기만한, 여자아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주님, 제가 태어나던 때의 저를 늘 남에게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남이 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평화를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이 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남이 저에게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남이 저에게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그들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기도를 읽으며.... 나의 탄생은, 주위의 기쁨이었을까............. 를 생각하니.... 답이 저절로,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추신
그래도.. 장담하건데, 살면서.. 그 아들보다는 엄마께 기쁨과 자랑거리... 그리고 마지막까지 의지가 되었다는 거.....
  

-미영


Friday, February 17, 2012

REQUIEM

모짜르트의 레퀴엠(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미사곡) - 
태어나서, 처음으로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음악.


YouTube Link: Requiem - Mozart


다시 들어도,
언제 들어도...
그리고 지금처럼 최악으로 마음이 우울할 때는 더욱....


웅장함.. 엄숙함... 그리고 아름다움.....!!!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곡을 듣고 나면,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다는 것...!

I. Introitus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Te decet hymnus, Deus in Sion,
et tibi reddetur votum in Jerusalem;
exaudi orationem meam, ad te omnis caro veniet.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그리하여 영원한 빛이 저들에게 빛나길..
당신은 찬미받아 마땅하나이다, 시온의 하느님,
당신께 [드린] 서원 예루살렘에서 지켜지리이다.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당신께로 모든 육체가 나아가리이다.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Kyrie eleison,
Christe eleison,
Kyrie eleison.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

II. Sequentia
Dies irae, dies illa
solvet saeclum in favilla,
teste David cum Sibylla.
Quantus tremor est futurus,
quando judex est venturus,
cuncta stricte discussurus.
진노의 날, 그 날
[인간]세대를 티끌로 바수어 버리리라,
시뷜라와 함께 하던 증인 다윗[의 증언]에 따라.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있으리오,
심판자가 임재하시어
만물이 산산히 부숴질 때.
Tuba mirum spargens sonum
per sepulchra regionum,
coget omnes ante thronum.
Mors stupebit et natura,
cum resurget creatura,
judicanti responsura.
Liber scriptus proferetur,
in quo totum continetur,
unde mundus judicetur.
Judex ergo cum sedebit,
quidquid latet apparebit,
nil inultum remanebit.
Quid sum miser tunc dicturus?
Quem patronum rogaturus,
cum vix justus sit securus?
기적의 나팔소리
[세상]끝 묘지들까지 울려퍼져
만인을 왕좌 앞으로 모으리라.
죽음과 자연이 놀라워하리라,
피조물이 부활하여
심판자에게 변명을 하리니.
기록한 책 펼쳐지리라,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
이윽고 세상이 심판을 받으리라.
하여 심판자 좌정하시리니
숨겨진 일들이 드러나리라,
[지은 죄] 남김없이 벌을 받으리라.
무엇을 가련한 나 그때 말하리오?
어느 변호자에게 나 도움을 청하리오?
자칫 의인마저 무사하지 못하리니.
Rex tremendae majestatis,
qui salvandos salvas gratis,
salva me, fons pietatis.
두렵기만 한 위엄의 왕이시여,
당신은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은총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나를 구원하소서, 자비의 샘이시여.
Recordare Jesu pie,
quod sum causa tuae viae,
ne me perdas illa die.
Quaerens me sedisti lassus,
redemisti crucem passus;
tantus labor non sit cassus.
Juste judex ultionis,
donum fac remissionis
ante diem rationis.
Ingemisco tanquam reus,
culpa rubet vultus meus;
supplicanti parce, Deus.
Qui Mariam absolvisti,
et latronem exaudisti,
mihi quoque spem dedisti.
Preces meae non sunt dignae,
sed tu, bonus, fac benigne,
ne perenni cremer igne.
Inter oves locum praesta,
et ab haedis me sequestra,
statuens in parte dextra.
기억하소서 자비로우신 예수여,
당신의 [인간]삶으로 하여 나 존재하고 있음을,
그 날에 나를 멸하지 마소서.
나를 찾으시느라 당신은 기진하셨나이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나를] 대속하셨나이다: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소서.
응분의 벌을 내리시는 정의로운 심판자시여,
죄사함을 선사하여 주소서.
엄밀한 응보(ratio)의 날이 오기 전에
죄인이오니 나 탄식하나이다,
잘못으로 인하여 나의 뺨은 붉어지나이다:
겸손하게 비는 저를 어여삐 여기소서, 하느님.
[막달레나] 마리아를 사면하셨듯이,
강도의 말을 경청하셨듯이,
당신은 나에게도 희망을 주셨나이다.
나의 탄원은 하잘것 없으오나,
당신은 선한 분이시니 자애를 베푸소서,
영겁의 불에 나 불살라지는 일이 없도록.
양 무리 가운데 [나의] 자리를 마련해 주소서,
염소 무리에서 나를 떼어 놓으소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어서.
Confutatis maledictis,
flammis acribus addictis,
voca me cum benedictis.
Oro supplex et acclinis,
cor contritum quasi cinis,
gere curam mei finis.
변명의 여지없는 자들 저주받아
쓰거운 불길에 처해질 때
축복받은 자들과 함께 나를 부르소서.
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나이다,
마음은 [타버린] 재처럼 바숴졌나이다,
나의 종말을 돌보아 주소서.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Huic ergo parce, Deus.
Pie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Amen!
눈물의 날, 그 날,
티끌로부터 부활하여
죄인은 심판을 받으리라.
하오니 그 사람을 어여삐 여기소서, 하느님.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아멘!

III. Offertorium
Domine Jesu Christe! Rex gloriae!
Libera animas omnium fidelium
defunctorum de poenis inferni et de profundo lacu!
Libera eas de ore leonis,
ne absorbeat eas tartarus,
ne cadant in obscurum:
sed signifer sanctus Michael repraesentet eas in lucem sanctam,
quam olim Abrahae promisisti, et semini ejus.
주 예수 그리스도여! 영광의 왕이여!
구원하소서, 모든 죽은 신실한 영혼들을
저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저 심연의 곳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사자의 아귀에서.
지옥이 저들을 삼키지 못하게 하소서,
어둠 속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인도자 성 미카엘로 하여 저들을 거룩한 빛 속으로 이끌게 하소서.
그 옛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그 빛 속으로.]
Hostias et preces tibi, Domine, laudis offerimus.
Tu suscipe pro animabus illis, quarum hodie memoriam facimus:
fac eas, Domine, de morte transire ad vitam.
quam olim Abrahae promisisti, et semini ejus.
희생제물과 탄원을 당신께 [바치나니다], 주님, 찬미를 바치나이다.
받아주소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자들의 영혼을 위하여:
저들을 옮겨주소서, 주님,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 옛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약속하셨던 [생명으로.]
Sanctus, sanctus, sanctus Dominus Deus Sabaoth!
Pleni sunt coeli et terra gloria tua.
Hosanna in excelsis.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 위에 당신의 영광 가득하도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i.
Hosanna in excelsis.
복되어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eis requiem.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eis requiem sempiternam.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분, 저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는 분, 저들에게 늘 안식을 주소서.

IV. Communio
Lux aeternam luceat eis, Domine,
cum sanctis tuis in aeternum, quia pius es.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s,
cum sanctis tuis in aeternam: quia pius es.
영원한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주님,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당신은 자비로우시니.
영원한 안식을 저들에게 주소서, 주님,
끝없는 빛을 저들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당신은 자비로우시니.

Thursday, February 16, 2012

부활과 천국..


이제민 신부 “우리가 믿는 부활은 없다”
이제민 신부, 대화문화아카데미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부활관 밝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은 부활이 아니다”
2012년 02월 11일 (토) 16:40:28한상봉 기자  isu@catholicnews.co.kr
이제민 신부(마산교구 명례성지)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지난 2월 10일 ‘내가 믿는 부활은?’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부활관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제민 신부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고맙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칼 라너의 말을 빌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부활은 없다고 믿는다” 고 말했다.

이제민 신부는 “올해로 88세가 된 제 어머니는 부활을 믿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리는 부활에 대한 그림은 신학적으로 틀렸다” 고 전했다. 예수는 그분이 믿는 방식으로 부활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활의 삶을 보는 이제민 신부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돌고 있다고 믿는 어머니에게도 태양은 여전히 따스한 빛을 내려 보낸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다만 교회에서 가르치는 부활을 믿을 뿐인데, “지금 우리 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게 이제민 신부의 진단이다. “내 어머니의 신학 수준이 그대로 우리 한국교회의 신학 수준이라면 서글픈 일”이라며 “교회는 발전해 가는 현대인에게 늘 과거의 사고방식만을 전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입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시체는 되살아나지 않는다  
  
▲ 이제민 신부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저승과 부활신앙은 다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부활은 죽어서 얻는 게 아니라, 살아서 제 몸으로 구현해야 할 새로운 삶이다.  
이제민 신부는 “부활메시지가 단순히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이 이 다음에 부활해 천당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활신앙이 허무를 달래는 것도 아니고,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만 부활하고 나머지는 부활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넌센스라고 일갈한다. 더군다나 예수의 이름과 ‘부활’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수천년 이 땅에서 살아온 조상들을 지옥에 버리는 것 역시 오만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부활을 ‘죽음 다음에 오는 삶’으로 고정시키고, 예수의 부활마저 ‘그분의 시체가 되살아난’ 것으로 여기고 이를 증명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예수는 사후의 삶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후의 삶을 지금 당신의 인생을 통하여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 우리도 그분처럼 남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이 없이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전한다. 즉,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즉, “부활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이를 두고 이제민 신부는 “죽음으로 내 인생은 모두 끝난다. 다시 살아나는 삶은 없다”고 단언하며, 부활이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 “죽은 자들이 가게 된다는 저승(천국이라 부르든 극락이라 부르든)을 나는 믿지 않는다” 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후(死後)’는 ‘인생 다음’이 아니라 ‘인생 중’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부활은 우리 생애에서 수없이 발생한다

이제민 신부는 “우리보다 앞서 죽은 이들이 지하세계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누워 있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 ‘나는 부활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 맞갖는 삶을 ‘지금여기’에서 살아야 하며, 그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죽음과 부활이 우리 생애 안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하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우리 머리가 물속에 잠기듯, 낡은 인간은 무덤에 묻히고 완전히 잠겨 영영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우리 머리를 물에서 다시 건져낼 때 거기서 새 인간이 태어난다”고 한 말을 상기시키며, 영생은 자신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삶에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마저도 그분 생애의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분 생애 안에서 늘 일어난 일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부활한 자는 자기를 죽임으로써 사랑의 삶을 산다. 타락한 종교에는 이 사랑이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가기 위해 선을 행하고 남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다. 천국은 자기만 잘 살려고 남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이런 사랑을 죽일 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 삶의 신학 콜로키움에서 이제민 신부는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활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전하며, 주변에서 듣는 '부활체험 이야기'가 정작 복음서가 전한 '부활'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떠도는 '연옥체험'이나 '천국체험'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부활이 발생하지 않는다
“먼저 세상의 빵이 되어야 한다”


덧붙여 이제민 신부는 우리가 “부활을 믿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는 부활의 삶을 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천국은 부활을 입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역시 자기만 다시 살아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는 꿈을 꾸는 무리들이 모여 기도하는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회가 ‘믿음’의 이름으로 저희들만의 영복을 위해 모일 때 종교의 타락이 시작된다고 믿는 이제민 신부는 “이런 맹신과 광신의 집단이 인간을 오류로 안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부활이 삶을 살고 싶은 이들은 먼저 ‘빵이 되라’고 요청받는다.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고, 목마른 이의 물이 되고, 헐벗은 이의 옷이 되라고 주문한다. 감옥에 갇힌 이에게 위로가 되고, 타인의 고통을 제 고통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가진 것을 다 팔아 나누어 주고, 우리 몸에서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가 풍겨나오게 사는 게 부활의 삶을 ‘지금여기’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마태 25, 34)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을 거절하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 고백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듣게 될 말은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는 소리다.

결국 부활의 삶이란 ‘나’는 사라지고 ‘세상’을 살리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활은 ‘세상’은 사라지고 ‘나’만 살리는 부활이다. 이처럼 우리는 죽어서 영복을 누리는 부활이 아니라, 지금 사는 동안에 겪는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와 영원하신 하느님을 닮아간다. 그러니 “우리는 땅에서 하늘을,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웃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땅과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사는 길”을 접어야 한다.

죽은 다음에 올 육신의 부활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사는 동안에 무덤을 파는 일일 뿐이다. 이제민 신부는 마지막으로 “설혹 고통을 주는 십자가가 나에게 온다 해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 이렇게 제 몸으로 부활한 몸을 느낄 수 있는” 부활의 삶을 미루지 말고 당장 여기서부터 살기 시작하자고 권한다.


*

나는 개신교인이다.
그러나 늘, 교회에서 듣는 천국관과 부활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해설에 의문이 먼저 들고, 깨끗하지 못한 논리에 짜증이 났다. 죽었다 살아났다면서 천국을 보았다는 사람들, 정말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부분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몰랐고, 왜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몰랐다.

그리고, 천국 가기 위해 '사랑'을 베푸라는 사람들의 말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로지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사람들만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배척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꽹과리 소리같은 '사랑'을 남발하는 사람들....

'세상적'이라는 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자신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은 아주 느슨하고 그럴 듯한 잣대로 세상의 것을 취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이들도 수없이 만났다. 목회자이건, 성도들이건...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숨통이 트임을 느낀다. '그렇지, 이거야!' 하며, 내가 믿는 기독교를 드디어 만났다. 동안, 말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내 부활관을, 내 천국관을 이제민 신부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기독교인들의 오만과 과잉과 맹신과 모순과, 이기심에 대한 일갈이다.

그렇지..!
이거지...!!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부활'이고, '천국'이지..!!!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것은 힘들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아주 아주 힘든 거지....!!!!!


- 미영.






Wednesday, February 15, 2012

조강지처를 버리고....


19살에 남편을 만나, 20년을 함께 산 남편. 그 남편의 한의원이 망하게 되고, 더하여, 그 남편이 바람이 나더니, 재기불능의 상태에서, 재수생, 중3 아들을 남겨놓고 이혼해 달란다. 내 착한 친구의 이야기다.

바보같은 내 착한 친구는, 비자금 한 푼 조성(?)하지 못한 체 당장 생활비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 판국에, 그 남자의 배신에 대한 상처가 더 커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 친구가 부르짖는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20년을 그사람만 바라보며 산 나에게, 어떻게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갈 수 있나...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나는 남에게 나쁜 짓 한 번, 거짓말 한 번 하지 않고 살았는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남자, 내연의 여자가 집 팔아 한의원 개원해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그 돈으로 재기해서 내 친구에게 생활비와 교육비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제발 이혼해 달라고.......!

*


한국은 지금....
도덕성의 부재인가....

도대체 배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남자를 어떻게 매장시켜야 할까....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막장드라마를 더 봤어야 했다.. 이럴 때, 막나가는 법이라도 배워놓을 걸 그랬다.

한국 사회는 무섭다.
한국 사회는 뿌리부터 썩어가는 듯 하다.
근간이 사라져간다.

도덕의..
윤리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 미영